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정당들이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시민 없는 대의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정부의 인사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원천 배제되고 있는 것도 촛불 거버넌스와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청문회 제도의 개선책에서도 시민의 역할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문재인정부에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참여하는 것이 '시민사회와의 협치'라고 비꼬는 것도 온당치 않다. 과거 보수정부도 민주정부도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인물을 '수혈'받았고, 그러한 수혈의 한계도 여실히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요구하는 것은 수혈이 아니라 수술이다.
청와대는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 등 외치만 맡겠다고 흘리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할 수도 없고 내치가 받쳐주지 않는 외치는 무력할뿐더러,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대통령 당선 이후 급변할 세계 및 한반도 정세 대응 등 내치보다 외치가 훨씬 중요한 시점이다. 내치에 실패하면 국민이 일시적인 고통을 받는 데 그치지만, 외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단순명쾌한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임기연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의 최대 열매 가운데 하나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최근 몇년간 착실히 축소되어왔다. 2012년 선거에서의 대대적인 관권개입과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대부분 흐지부지되었고, 수사기관의 독립성, 관료조직의 중립성, 언론의 공정성 등 재발방지 장치들이 하나같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의사를 직접 표시할 기회는 극도로 억압되었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총선은 일반적으로 '정권심판'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한다.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피로감, 반복되는 실정, 그리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피폐화되고 있는 시민들의 삶 등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정권심판론'이 부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재는 '정권심판'이 아니라 '정치권심판' 프레임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조짐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김무성 대표 등 국정화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이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를 모두 '반(反)대한민국 사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국정화의 이유로, '국론분열 방지와 국민통합'을 국정화의 최종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데에서 이들의 진정한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대한민국과 반대한민국이라는 대립구도로 우리 사회를 구분하고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민주-반민주' 혹은 '진보-보수(혹은 수구)' 같은 대결구도를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 이를 통해 비판세력을 반국가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정치적 생존권까지 박탈할 수 있게 된다.